한국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관들의 파트너십 발표와 지분 인수 경쟁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형도를 들여다보면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파트너십은 넘쳐나는데 상용 서비스로 전환된 사례는 여전히 드뭅니다. 왜 이 전환율이 낮은지, 그럼에도 기관들이 계속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Key Takeaways
- 한국 기관들의 암호화폐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단순 업무협약(MOU)을 넘어 실제 사업 영역, 거래소 지분 인수까지 확장이 확인된다.
- STO 표준 주도권, 스테이블코인 결제망, 수탁 시장 등 핵심 금융 인프라의 길목을 선점하기 위한 진영 간 물밑 경쟁이 심화되었다.
- 해외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한국은행 CBDC 및 국내 규제 맞춤형 레일을 직접 구축하는 국산 인프라 빌더들이 기관 비즈니스의 새로운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 해외 웹3 재단들의 한국 진출 공식이 리테일 커뮤니티 빌딩에서 대기업·금융사 협업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으며, 전통 금융이 주도하는 시장 개편이 가속화된다.
1. 심화되는 MOU 경쟁

위 지형도는 타이거리서치가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흐름을 정리한 관계도이다. 그러나 구조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 중 어느 것이 실제 사업의 영역인지, 어느 것이 단순 업무협약(MOU)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중심 허브와 주변부의 경계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복잡함 자체가 현재 한국 암호화폐 기관 시장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타이거리서치가 추적한 150개 기관, 196건의 협력 관계 데이터가 증명하듯 아직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허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국내 기관들은 규제가 완전히 확정되기 전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진영을 구축하는 중이다. 현재 경쟁은 스테이블코인, STO(토큰증권), 수탁(암호화폐 보관)이라는 3대 전선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금융기관들의 거래소 지분 인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인데, 규제가 완비되기 전 시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3. 섹터별 관계도로 알아보는 한국 암호화폐 시장
각 섹터별 관계도를 살펴보면 수탁은 제도를 통과해 이미 가동 중인 사례가 많다. 반면 RWA와 STO는 법 시행을 기다리느라 여전히 계약이나 업무협약(MOU) 단계에 묶여 있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확실한 주도권을 쥔 표준 사업자 없이 비슷한 정체를 겪는 중이다.
이처럼 분야마다 장벽의 성격이 다르다 보니 돌파 전략도 제각각이다.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국내 연합을 공고히 하는 진영이 있는 반면, 규제가 먼저 열린 해외로 눈을 돌려 우회로를 개척하는 플레이어도 있다. 각 영역의 장벽과 플레이어들의 구체적인 대응 방식을 섹터별로 살펴본다.
3.1. RWA/STO: 법은 통과, 상품화 인프라가 관건

국내 STO 시장은 코스콤 중심의 컨소시엄과 신한투자증권 중심의 조각투자 연합이라는 두 축으로 나뉜다.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해외 거점을 활용해 이들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택했다.
코스콤은 한국거래소가 지분 76.6%를 보유한 증권망을 운영하는 핵심 기관이다. ‘증권사 공용 인프라 제공’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춰, 특정 발행사와의 독점 계약 대신 11개 증권사를 자사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모델을 추진 중이다. 발행·유통 기술 표준
을 선점하고 예탁결제원 총량관리 기준에 맞춘 인터페이스를 확보해 중립 인프라 사업자 지위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신한투자증권은 STO 인프라를 빠르게 도입하며 자체 생태계를 다져왔다.
2022년 람다256과의 PoC를 시작으로 2024년 연합 플랫폼 ‘PULSE’ 출범, 2025년 멀티플랫폼 계좌 통합 서비스 공식화가 그 결과다. 2025년 한 해에만 투자계약증권 발행 10건에 계좌관리기관으로 참여했고, 장외거래소 NXT의 대주주 지위까지 확보해 발행부터 유통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체 체계 안에 구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인프라 정비를 기다리는 대신 해외로 직행했다.
홍콩에서 디지털채권을 발행하고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로부터 디지털자산 리테일 라이선스를 취득했으며, 오는 6월 MTS를 출시해 현지 개인 투자자 대상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JP모건,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이 참여하는 DTCC 주도 토큰화 워킹그룹에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류해 글로벌 표준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향후 국내 STO 인프라가 글로벌 표준과 연동되는 시점에 규제 정합성과 협상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취지다.
3.2. 스테이블코인: 기술보다 입법 구조가 문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다른 영역에 비해 참여 기업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카드사, 거래소, 핀테크, 인프라 기업이 저마다의 강점을 내세워 각기 다른 경로로 진입하고 있다.
가장 진영이 큰 곳은 카카오 그룹이다. 카카오톡,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가 공동 TF를 구성해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 지역화폐를 아우르는 ‘슈퍼월렛’ 구축을 추진 중이다. 그라운드X 시절부터 카이아(Kaia) 퍼블릭 체인을 운영하며 축적한 인프라가 무기다. 카이아는 이미 테더(USDT)를 네트워크에 배포해 실질적인 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기존 결제망을 블록체인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한카드는 지난 4월 솔라나와 MOU를 체결했다. 신한카드는 MOU 이전부터 솔라나, 비자, 마스터카드, 파이어블록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해 이미 1차 기술 검증을 마친 뒤 지갑과 스마트계약 등 6개 분야의 고도화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기존 카드 결제 인프라를 블록체인 레일로 옮겨오겠다는 구상이다.
거래소 진영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우회로로 삼았다. 두나무는 자체 블록체인 ‘기와(GIWA)’를 기반으로 네이버파이낸셜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빗썸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서클·WLFI 등과 손잡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망을 먼저 확보하는 방향을 택했고, 토스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사업도 논의 중이나 아직 진전은 더딘 상태다.
각 진영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현시점에선 규제라는 동일한 벽에 가로막혀 있다. 한국은행은 은행 지분이 과반을 넘는 컨소시엄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51%룰을 주장하는 반면, 핀테크 기업에도 진입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견이 맞서면서 당정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발행 주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순간, 결국 가장 촘촘한 대중적 접점을 확보해 둔 진영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3.3. 수탁: 더 많은 기관 자금이 필요하다

수탁 시장의 지형도는 다른 영역에 비해 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네 곳의 주요 수탁사가 저마다 국내외 금융기관 및 기술 파트너를 확보하며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KODA는 KB국민은행과 해시드, 그리고 해치랩스가 공동 설립자로 나선 구조다. 전통 금융 자본과 암호화폐 전문 VC가 결합했다는 점이 다른 수탁사들과의 차별점이다. 이후 한화투자증권, IBK캐피탈, 교보증권이 투자자로 참여했으며 삼성화재와 수탁 전용 보험 계약을 체결해 안정성을 보완했다.
KDAC은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전통 금융 주도형 수탁사다. NH농협은행은 또 다른 수탁사인 카르도 설립 시 출자했다가 KDAC과의 합병을 거쳐 주주로 편입되었다. 합병 후 KDAC에는 국내 5대 은행 중 두 곳이 주주로 참여하는 구조가 됐다.
BDACS는 기술과 파트너십 확보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택했다. 우리은행과의 협력, Galaxy·GK8 등 해외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수탁·결제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Circle과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1을 Circle의 Arc 블록체인에 발행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고, KRX 주도 KDX 컨소시엄에서는 유일한 VASP 기업이자 주요 수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1의 PoC를 진행하며, 수탁과 결제 인프라를 동시에 겨냥하는 수탁사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비트고코리아(BitGo Korea)는 글로벌 수탁 기업 비트고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했다. 본사인 비트고는 7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수탁하고, 전 세계 비트코인 온체인 거래의 약 20%를 처리하는 대형 기관이다. 국내에서는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각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금융 자본과 통신사 자본이 함께 결합된 수탁사라는 점이 특징이다.
다양한 기관들이 이미 각자의 수탁사를 앞세워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다만 수탁사의 경우 지난해 전사 적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 자금이 들어오기 전에 길목만 마련해 둔 셈이다.
앞서 다룬 세 영역(STO·스테이블코인·수탁)의 인프라 구축 현황을 종합해 보면 한 가지 뚜렷한 한계가 드러난다. 국내 기관들이 사업 구조는 짜놓았지만 정작 핵심적인 기술 인프라는 대부분 해외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다.
5. 완전히 뒤바뀐 시장 분위기
최근 쏟아지는 파트너십을 단순한 사업 발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제도가 정비되기 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선점하고, 그 구도가 향후 규제의 기준이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포지셔닝이다. 지금의 파트너십 경쟁은 시장 선점을 넘어선 ‘규제 설계전’에 가깝다.
한국 암호화폐 시장은 불과 반년 만에 지난해와 다른 구조로 바뀌었다. 수탁사 진영이 갖춰지고 STO 컨소시엄이 짜인 데 이어, 대형 금융지주들은 거래소 지분 확보에 나섰다. 반면 개인 투자자 거래량은 급격히 줄었다. 국내 5대 거래소 합산 거래대금은 전년 동기 대비 약 48% 감소했다. 시장의 중심축이 리테일에서 기관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해외 암호화폐 재단들의 한국 진출 전략도 바꾸어 놓았다. 솔라나가 신한카드의, 아발란체가 미래에셋의 파트너로 채택된 것처럼, 이제 국내 시장 진입에 목적을 두는 재단은 주요 목표가 국내 거래소 거래량 확보에서 금융기관 및 대기업과의 협력이 되었다. 과거처럼 커뮤니티 밋업을 통해 개인 유동성을 모으던 방식은 더 이상 주효하지 않다.
이러한 시장 개편의 결과는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KBW 2026에서 가시화될 전망이다. 시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올해 KBW는 공개된 연사진만 확인해봐도 전통 금융권 인사들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에는 많은 해외 재단들이 토큰 보상을 내걸고 커뮤니티 행사(사이드 이벤트)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실질적인 비즈니스를 논하는 자리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